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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July 2, 2020

[컬쳐/CLASSI그널] 베토벤 & 아카데미 - 뷰티누리(화장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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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academy)' 라는 단어에서 무엇이 떠오르나요? 영화와 관련하여 <아카데미 시상식>을 떠올리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일반적으로는 우선 학교나 학술단체를 떠올리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실제로 기원전 385년 플라톤이 세웠던 교육 기관 '아카데메이아(Ἀκαδημία)'에서 유래한 이 단어의 사전적 의미 또한 주로 학술협회, 대학, 전문학교 같은 교육 기관을 가리키고 있지요. 오늘날 유명한 음악원 또는 음악대학교의 명칭에도 아카데미가 들어가 있곤 합니다. 영국에 있는 왕립음악원(Royal Academy of Music)이 그 한 예가 되겠네요.

그런데, 베토벤(1770-1827)이 빈에서 활동하던 시기(1792-1827)에는 이 아카데미라는 단어가 다른 뜻으로도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바로 '음악회' 입니다. 독일어로 아카데미에 해당하는 단어 Akademie를 단독으로 사용하지는 않았고 앞에 Musik(음악)이란 단어를 더하여 musikalische Akademie 이렇게 사용했지요. 당시 아카데미는 모든 음악회를 지칭하지는 않았습니다. 

왕족이나 귀족이 아닌, 일반 시민들에게 공개된 음악회를 가리켰지요. 사실 오스트리아에서 아카데미가 처음부터 일반 시민들에게 공개된 음악회를 뜻하지는 않았는데, 이렇게 된 것은 1750년대부터였습니다. 일반 시민들이 음악을 점차 적극적으로 향유하는 시기가 도래한 것이었죠. 베토벤은 바로 이 시기에 활동했던 것입니다. 물론 당시에도 귀족들이 자신들의 공간에서 음악을 향유하던 문화는 아직 존재했습니다. 베토벤의 몇몇 작품들은 아카데미를 통해 공개적으로 처음 연주되기 전, 귀족의 저택에서 미리 연주되기도 했죠. 대표적인 작품이 롭코비츠(F. F. J. M. Lobkowitz) 공작의 저택에서 첫 선을 보였던 영웅 교향곡입니다.

아카데미는 여러 장소에서 열렸는데, 베토벤이 활동하던 당시에는 오페라나 연극 공연이 주 목적이던 극장들, 왕궁의 무도회장, 그리고 대학교의 연회장 등이 주요 공연 장소였습니다. 아카데미가 기악/오케스트라 음악회임을 생각한다면, 전문 콘서트홀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 아카데미가 주로 열렸다는 사실이 조금 의아하게 다가올 수 있는데요. 사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당시 빈에는 콘서트홀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현재 빈에는 무직페어라인(Musikverein)이나 콘체르트하우스(Konzerthaus) 같은 걸출한 콘서트홀들이 있지만 19세기 초에는 사정이 달랐습니다. 빈에서 처음으로 콘서트홀이 지어진 것은 1831년으로 베토벤 사망한 지 4년이 지난 시점이었습니다.

베토벤이 주최했던 몇몇 아카데미 프로그램 구성을 보면 오늘날 음악회의 그것보다 자유로운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1800년 4월 그가 개최한 첫 아카데미의 프로그램은 모차르트의 교향곡 한 곡과 하이든의 오라토리오 천지창조 중 2곡, 베토벤 자신의 피아노 협주곡 한 곡, 교향곡 1번, 7중주, 그리고 그의 피아노 독주곡 한 곡. 이렇게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한 음악회 안에 교향곡과 성악곡, 독주곡, 그리고 실내악 곡이 모두 들어있었던 것이죠. 물론, 그 중심은 교향곡이었습니다. 한편 음악회도 오늘날보다 상당히 길었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는데 교향곡 5번과 6번이 동시에 초연된 것으로도 유명한 1808년 12월에 열렸던 아카데미는 약 4시간가량 소요되기도 했습니다.

1792년 말, 자신이 태어난 독일 본에서 빈으로 이주한 베토벤의 빈 데뷔는 1795년 3월 한 아카데미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자신이 주최했던 아카데미는 아니었고 피아노 협연자로서 출연했던 것인데 그는 여기서 자신의 피아노 협주곡 1번 (또는 2번)을 연주하죠. 같은 해 12월에는 그의 스승이었던 하이든이 주최한 아카데미에 피아노 협연자로 등장하기도 합니다.

베토벤.png

(1800년 4월2일 열렸던 베토벤의 첫 아카데미를 알리는 포스터. 

                           출처 – Digitalesarchiv/Beethoven-Haus Bonn)

몇 년 후인 1800년 4월2일 베토벤은 부르크 극장(Burgtheater)에서 마침내 처음으로 자신이 주최한 아카데미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1824년 5월23일에 대 무도회장(großer Redoutensaal)에서 그의 마지막 아카데미가 열렸죠. 이 24년 동안 그가 개최했던 아카데미는 9번에 불과했으니 당대 빈 시민들도 그의 아카데미를 자주 접할 수는 없었겠지요. 합창 교향곡이 초연된 1824년 5월7일의 아카데미는 무려 10년 만에 열렸던 아카데미였습니다.

베토벤이 열었던 아카데미에서는 지금까지도 회자되곤 하는 장면들이 연출되기도 하였습니다. 아마도 그 정점은 합창 교향곡이 초연되었던 아카데미였을 것입니다. 노쇠하였고 청력이 너무 상실된 베토벤은 연주 내내 지휘자 옆에 서 있었지만, 곡의 진행에 영향을 끼치지 못했으며, 청중들의 커다란 박수 소리조차 듣지 못했지요. 베토벤의 이러한 모습은 공연의 큰 성공과 대비되며 더욱 가슴 아프게 다가옵니다. 그리고, 이 공연이 바로 위대한 베토벤이 마지막으로 무대에 올랐던 역사적인 아카데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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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박병준씨는 음악학자이자  음악칼럼니스트로 오스트리아 그라츠 국립음악대학교에서 비올라를 전공했으며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음악학)를 취득했다. 현재는 광명 심포니 오케스트라 비올라 수석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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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02, 2020 at 09:40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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