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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June 16, 2020

임지현 “與의 역사왜곡처벌법은 위험한 발상… 국정교과서와 뭐가 다른가” - 문화일보

karitosas.blogspot.com
■ 임지현 서강대 트랜스내셔널인문학연구소장사학과 교수>

5·18 북한군 개입설 헛소리인 줄 다 아는데
법까지 만들어 처벌하려 하는 게 바람직한가
광주 기억 영화 ‘김군’이 法보다 100배 나아

민주화세력의 도덕적 정당성 ‘선민의식’ 변질
권력문제를 도덕성 환원…‘조국 사태’ 대표적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전파를 막는 과정에서 ‘메디컬 파시즘’을 우려해야 할 정도로 많은 비상조치가 동원됐습니다. ‘벌거벗은 생명’을 지키는 원초적 욕구와 프라이버시가 있는 인간으로 품위를 유지하는 것 사이의 긴장과 갈등에 대해 우리 사회는 제대로 논의하지 않았습니다. 어디까지 프라이버시를 양보할지 사회적 공감대를 이루고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하는데, 이런 때에 여당이 과거사법을 21대 국회 1호 법안으로 추진한다는 건 참으로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임지현 서강대 트랜스내셔널인문학연구소장 겸 사학과 교수는 정치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코로나19 사태라는 역사적 재난의 시기에 때아닌 ‘역사 바로 세우기’ 논란이 벌어지고, 일본군 위안부 운동마저 위기를 맞은 게 안타깝고 답답한 듯했다.

1990년대부터 민족주의 비판, 우리 안의 파시즘 비판, ‘기억 연구’ 등으로 국내외 학계의 논쟁을 이끌어 온 학자답게, 현안들에 대한 진단은 거침없고 해법은 분명해 보였다. 역사에 정답이 있다는 사고에서 벗어날 것, 위안부 문제를 여성 인권이 아닌 민족 문제로 환원시키지 말 것, 코로나19 사태가 가져온 위험성을 경계하되 새로운 기회도 놓치지 말 것 등이 그것이다. 지난 12일 트랜스내셔널인문학연구소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두 시간여의 인터뷰 시간은 너무 짧았고, 할애된 신문 지면은 너무 작게 느껴졌다.

―여당이 ‘역사 바로 세우기’에 나서고 있습니다.

“취지는 충분히 인정합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때 억울하게 희생당한 사람들의 가족이나 친구, 동료들 입장에선 그걸 ‘북한군 소행’이라고 하는 주장은 참을 수 없겠죠. 분노하겠죠. 그러나 그렇다고 역사를 법의 틀로 가두겠다는 발상이 바람직한가에 대해 나는 회의적입니다. 이제 어떤 역사 해석이 옳은가를 국회가 정하겠다는 겁니까.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건 ‘이게 정답이니, 이게 아니라고 하는 건 잘못됐다’는 논리입니다. 국정교과서식 사유와 다를 게 없어요. 국정교과서가 나쁜 거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국정교과서를 저 사람들이 써서 나쁜 거고, 우리가 쓰면 된다’는 발상이죠. 이렇게 모든 걸 단순화하는 건 우리 사회의 지적 잠재력을 죽이는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은 16일 허위사실을 유포해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부인·비방·왜곡·날조한 자를 7년 이하 징역 또는 7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하는 내용의 5·18 민주화운동특별법 개정안 초안을 공개했다.

―역사 왜곡을 처벌해야 한다는 사람들은 독일의 사례를 근거로 듭니다.

“통상 ‘아우슈비츠 거짓말법’이라고 부르는 형법 제130조를 말하는 건데, 영국이나 미국은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사람도 처벌하지 않아요. 그냥 역사가들의 논쟁에 맡깁니다. (영화 ‘나는 부정한다(Denial)’로 알려진) 데이비드 어빙의 사례를 봅시다. 어빙은 (공공연히) 홀로코스트를 부정했는데, 영국이나 미국에선 체포되지 않다가 오스트리아 방문 때 체포됐습니다. 일반인은 누구인지도 모르던 사람이 갑자기 ‘표현의 자유’니, ‘학문의 자유’니 떠들면서 유명인이 돼 버렸습니다. 그때 진보 성향 집행부가 이끌던 미국 역사학회가 어빙의 체포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냈습니다. 왜 어빙에게 희생자 코스프레를 할 기회를 주느냐는 겁니다. (영화 내용대로) 어빙과 법적 공방을 벌여 승리한 데버라 립스타트도 성명서에 서명했어요. 지만원 씨 주장은 보수에서도 헛소리라고 하는데, 그 사람을 처벌하는 게 어떤 효과가 있을까요? 김수영 시인이 1960년대에 반공법 논쟁을 벌이면서 ‘99%의 자유는 자유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자유는 100%여야 한다는 겁니다. 여당에 그 글을 한번 읽어보라고 하고 싶어요. 나중에 정권이 바뀌어서, 미래통합당이 ‘6·25 남침설 부정하는 사람들은 법으로 처벌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할 겁니까?”

임 교수는 역사 왜곡에 대한 최상의 대응 사례로 다큐멘터리 영화 ‘김군’을 꼽았다.

“‘김군’이 누구냐, 지만원 씨가 (5·18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하면서) ‘북한군 제1광수’라고 지목한 사진 속 인물입니다. 그 사진의 주인공을 찾아가는 과정을 영화로 만들었어요. 결국 그 사람이 누구인지 확실한 물증은 안 나오고, 다만 넝마주이 같은 ‘서벌턴(subaltern·권력에서 배제된 사람)’으로 추정됩니다. 그가 반독재 투쟁에 앞장선 엘리트 민주화운동 그룹이 아닌 서벌턴이었기 때문에 잊힌 거죠. 영화 ‘김군’의 중요성이 여기에 있습니다. 지만원 씨의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반박하는 과정에서 잊혔던 서벌턴을 발굴했고, 이게 광주에 대한 우리 사회의 기억 형성에 큰 영향을 줄 수 있게 됐습니다. 5·18 왜곡 처벌법 100개를 만드는 것보다 이런 영화 하나를 만드는 게 훨씬 더 성숙한 대응이라고 봅니다. 특히 ‘김군’의 감독이 1983년생이고, 모든 스태프가 ‘광주 이후 세대’라는 것도 중요합니다. 기억 연구에서 ‘포스트 메모리(post memory)’라고 표현하는데, 이 영화를 통해 ‘광주 이후’의 세대가 광주를 기억하는 자기들만의 도구를 만든 겁니다.”

“위안부 인권문제를 민족문제로 몰아… 이용수 할머니 ‘친일파’ 매도”

식민지 아픔 ‘보편적 의제’인데
‘민족이 日帝에 당했다’로 환원
할머니의 흐린 기억 ‘거짓’ 취급

‘異論’을 허용하지 않는 민주당
‘민주주의 부재’가 가장 큰 문제
금태섭 징계는 있을 수 없는 일

―5·18과 관련해 최근 전두환 전 대통령의 발포 책임 부인이 공분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사법적 실증주의로 접근해선 안 됩니다. 아돌프 히틀러가 홀로코스트를 지시한 명령서는 발견되지 않았어요. 그런데 지금 히틀러가 홀로코스트에 책임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누가 있나요? 극소수의 홀로코스트 부정론자들밖에 없어요. 전두환 발포 명령서, 아마도 찾기 어려울 겁니다. 학살 규명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증거가 없어졌다는 겁니다. 비슷한 문서를 찾아내도 전두환이 ‘나는 그런 것 내려보낸 적 없다’고 하면 어떻게 하나요? 저렇게 뻣뻣한 것은 ‘증거가 없는데, 너희들이 나를 어떻게 하겠느냐’ 하는 사법적 실증주의에 입각한 계산이 아닐까요? 그럼 접근법이 달라져야죠. 문서나 증거는 항상 구성되는 겁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건 정황적 증거뿐인데, 진정성 있는 기억과 증언을 모아야 합니다.”

정치권에 대한 평가를 좀 더 들어봤다. 임 교수는 ‘기억 전쟁’에서 ‘도덕적 정당성의 비윤리성’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산업화 세력은 경제 성장과 산업화를 이끌었다는 점에서, 민주화 세력은 민주주의를 가져왔다는 점에서 자신들의 도덕적 정당성을 강조하는데, 그게 지나치면 선민의식과 같은 비윤리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얘기다.

“러시아 혁명이 성공하고, 트로츠키가 크렘린 궁전의 한 레스토랑에서 레닌과 식사를 했답니다. 그때 트로츠키가 ‘우리가 이런 곳에서 웨이터에게 서빙 받으며 밥 먹으려고 혁명을 한 게 아닌데’ 하고 말했답니다. 트로츠키는 1∼2년 지난 뒤 같은 곳에서 밥을 먹다가 ‘오늘은 왜 이렇게 서비스가 형편없나’ 하고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에 깜짝 놀랐답니다. 혁명가는 성인군자가 아닙니다. 사람이 산다는 게 그렇게 깨끗하지도 않고요. 이걸 인정하고 경계하는 사람과 ‘나는 숭고하고 깨끗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삶의 태도가 다르겠죠. 86세대도 순수성과 민중에 대한 공감 능력으로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민주화 운동에 뛰어들었다고 봅니다. 그건 의심의 여지가 없어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이게 권력의 문제가 됐는데도 계속 도덕적 정당성의 문제로 환원하려 한다면 답이 없죠. ‘조국(전 법무부 장관) 사태’가 그런 것 아닐까요.”

‘조국 사태’ 당시 여권 인사들은 조 전 장관을 일방적으로 옹호하거나 ‘조국이 문제가 있더라도 검사나 기자 집단보다는 낫다’는 식의 태도를 보였다.

“가장 큰 문제는 당내 민주주의가 안 되는 겁니다. ‘민주집중제’는 사실 ‘독재’의 레닌주의적 표현인데, 결국 이론(異論)을 허용하지 않는 겁니다. 혁명기에는 비상상황이니 그랬다 해도 지금 이러면 안 되죠. 금태섭 전 의원을 징계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86세대가 생각해야 할 게 있어요. 볼셰비키는 혁명할 때 우리 86세대보다 덜 순수하고 덜 헌신적이었을까요? 스탈린도 당을 위해 은행강도까지 했습니다. 그렇게 민중에 헌신적이었던 혁명가들이 정치권력을 잡은 뒤에 어떻게 됐습니까? 민주화 이후 30여 년이 지났는데, 이제 일상의 민주화, 삶의 민주화를 실천해야 합니다.”

한 사람이 목숨을 잃는 데까지 이른 ‘윤미향(더불어민주당 의원·전 정의기억연대 이사장) 사태’로 화제를 옮겼다.

―이번 사태, 그리고 지금의 일본군 위안부 운동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개인 비리 여부는 검찰이 밝히면 될 일입니다. 다만, 위안부 피해 할머니 문제를 계속해서 한민족이 일본 제국주의에 희생당했다는 민족적 억압의 문제로 환원시키는 경향이 있었던 것은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할머니 개개인이 겪은 고통과 아픔을 우리가 세심하게 살피기보다는 한민족, 한국 여성이 일제에 의해 얼마나 끔찍한 일을 당했는가에 초점이 맞춰졌어요. 2년 전쯤 나치 강제징용자료센터에서 일하는 독일인 ‘기억 활동가’가 위안부 소녀상과 관련해 연락을 줬어요. 바이에른주에 비젠트라는 인구 2000명의 소읍이 있는데, 한국인들이 그곳 네팔·히말라야 공원에 소녀상을 세우고 행사를 했다는 겁니다. 위안부 문제와 상관도 없고, 사람도 거의 찾지 않는 시골 공원에 소녀상을 세운 게 이상하게 느껴졌나 봐요. 위안부 운동의 문제점을 보여주는 일화라고 봅니다. 사실 위안부 운동은 군대가 여성 위안부를 두는 것의 ‘눈먼 익숙함(blind familiarity)’, 다시 말해 너무도 익숙해서 그게 죄라고 생각지 않아 왔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데 큰 공로가 있습니다. 국제형사재판소(ICC)가 로마의정서를 통해 이걸 반인도적 범죄로 규정했어요. 우리 식민지 시절의 아픔을 인류 보편적 의제로 키운, 아주 중요한 기여입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다른 한편에서 이걸 민족의 문제로 환원하려 하는 건 문제가 있습니다.”

임 교수는 특히 일부 정의연 지지자가 이용수 할머니를 공격하는 것에 분노했다.

“이용수 할머니를 ‘친일파다, 토착왜구다’라고 욕하는 사람들은 ‘결과론적 친일파’가 됐어요. 반일(反日)의 이름을 한 ‘결과론적 친일’이죠. 이용수 할머니의 기억이 흐리다고, 그 얘기를 거짓말로 몰고 있는데,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나 위안부 부정론자들과 똑같은 논리입니다.”

―서구, 특히 유럽인들은 나치의 만행에 치를 떨면서도 일본이 한 짓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그런 건가요.

“간단합니다. 유럽 중심주의예요. 동아시아 역사를 모르는 겁니다. 미국에서도 ‘태평양전쟁’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일본이 한국과 아시아 국가들을 식민화하고 중국에서 난징(南京)대학살을 저지르고, 인도네시아나 미얀마를 침공한 것들은 다 무시하는 작명법입니다. 그냥 미국과 일본만의 전쟁이라는 거죠. 2차 세계대전은 8월 15일 일본의 항복으로 끝난 건데, 유럽은 여전히 나치가 패망한 5월 8일을 종전 기념일로 채택하고 있어요.”

―동아시아는 잊힌 거네요.

“그런 점을 감안하면, 위안부 운동이 큰 역할을 한 겁니다. 위안부 운동이 유고 내전, 르완다 내전 당시 여성들에게 가해진 성폭력과 연결되면서 2차 대전 당시 동아시아에서도 똑같은 끔찍한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이 알게 된 거죠.”

최근 베트남에서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에 의한 인권 유린 등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늘고 있다. 피해자들이 한국을 찾아와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이에 대한 임 교수의 생각이 궁금했다.

―정부의 일부 당국자는 “베트남 사람들은 자신들이 전쟁에서 승리했기 때문에 과거사 얘기를 하지 말라고 한다”고 합니다.

“자기기만이죠. 현실 인식에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우선, 베트남이 승리한 게 아니라 월맹, 즉 북베트남이 승리한 전쟁입니다. 한국군의 학살은 주로 남베트남에서 베트콩과 싸울 때 일어났죠. 통일에 성공한 북베트남 권력자들 입장에서는 남베트남에서 벌어진 일이 자신들에게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있습니다. 또, 베트남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는 한국의 투자를 유치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피해를 당한 민중과는 입장이 다른 겁니다. 우리 광주를 생각해 보세요. 마을 단위로 사람이 그렇게 많이 죽었는데, 눈앞에서 가족이 죽어갔는데, 그걸 어떻게 잊겠습니까.”

―우리 정부의 사과와 배상이 필요하다고 보나요.

“독일도 20세기 초 나미비아에서 있었던 헤레로·나마 학살에 대해 국가가 공식적으로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사과하면 배상 문제가 따르기 때문이죠. 그래도 사과는 해야 한다고 봅니다. 다만, 국가 차원에서는 상징적인 수준의 배상을 생각하고, 베트남전 특수를 누렸던 기업 등이 기금을 조성하거나 희생자를 기리는 박물관·역사자료센터 등을 지원하는 식의 움직임을 보이면 어떨까 싶어요. 지금 그런 기업에 들어간 사람도 과거 베트남 특수의 혜택을 누리게 되는 셈이니, 그걸 ‘연루’됐다고 표현합니다.”

인터뷰 = 오남석 문화부 차장 greente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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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16, 2020 at 06:48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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